내 감정이 버거운 나에게, 안드레아스 크누프
33_ 무의식적 믿음은 종종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 믿음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이러한 믿음은 아주 어렸을 때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기원을 추적하는 일 역시 매우 어렵다. 만약 우리의 행동이 이러한 무의식적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정작 어떤 믿음이 어떤 행동을 결정지었는가 파악하는 것 역시 무척 힘든 일이다.
35_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되고 낡은 감정인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우리의 감각은 새로운 감정과 낡은 감정을 구분할 수 있을만큼 예민하지 않다. 그렇다보니 낡은 감정에 휩쓸리면서도 그것이 마치 지금 발생한 상황 때문에 새롭게 생긴 감정이라 착각하는 일이 생긴다.
36_ 어렸을 때 자주 혼자 남겨졌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외로움을 느낀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부모 아래서 성장한 사람은 소심한 사람이 되기 쉽다. 사람에 대한 불신을 키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후로도 타인의 의도를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오해하고는 한다.
45_21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교사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와 같은 전형적인 감정적 고통에 대해 '고통체'라는 이름을 붙여 설명한다. 그는 고통체란 제대로 체감되지 못한 채 쌓여있는 과거의 감정 덩어리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특정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현재의 감정뿐만 아니라 윌 내면에 도사린 과거의 감정 덩어리에 함께 휘말리는 것이다.
47_... 거부당했다는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부당하는 것 같다'라는 말은 실제로는 감정을 가장한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은 '당신이 나를 거부하고 있다'는 자기만의 추측과 해석을 포함하면서 그 때문에 자신이 슬픔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48_ 추측성 감정의 가면을 벗겨내기는 쉽다. '...처럼 느껴요' '...인 것 같아요'와 같은 문장을 사용할 떄 그것이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감정은 감정 그 자체일 뿐 다른 내용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49_자신의 감정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이로써 상대방이 나의 욕구에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54_ 감정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 모든 기분은 생겨났다가 반드시 사라진다. 쾌활함과 같은 기분 좋은 감정도 며칠 후에는 다른 감정들에게 그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이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지속적인 흐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아하는 감정은 물론 거부하고 싶은 감정까지 그 흐름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60_ 그런데 불행히도 많은 부모가 스스로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에 접근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제 감정을 아이에게 보여주기를 싫어한다. ... 이렇듯 부모는 감정을 위장하는데 익숙하다. 반면에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이들이 감정을 다루는 데 참고할 만한 훌륭한 본보기가 아니다. ...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보여주는 데 익숙하지 않은 부모 아래서 성장했고 그들 역시 똑같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성인이라면 자신의 감정과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고통이나 스트레스 슬픔이나 공포의 상황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강렬한 감정이 몰려올 때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데에만 매달린다.
62_외부의 상황은 우리가 느끼고 싶지 않거나 다루기 힘든 부적절한 감정의 시발점일 뿐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라는 생각 속에서 감정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태도는 더욱 굳어진다.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때 감정은 더욱 악화된다.
65_ 앞으로 휴식을 취할 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나는 내 몸을 통해 지금 무엇을 느낄 수 있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자녀가 있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다.
67_ 게다가 1차 감정이 2차 감정으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 1차 감정은 너무나 빨리 자신의 리를 양보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감정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 감정이 억제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설사 알아챈다 할지라도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68_ 2차 감정의 가장 비극적인 측면은 우리가 진짜 감정을 용감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점이다. 1차 감정이 생겼을 때 2차 감정은 곧바로 따라 일어나 1차 감정을 덮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2차 감정이라는 거미줄에 걸려버리고 만다.
77_우리의 마음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도화선과 진짜 원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78_ 우리의 마음이 자주 저지르는 착각... 두 번째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가 되어야만 행복하진다는 착각이다. '내가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난 더 행복해질 거야.' 지금 회사가 아니라 카페에 앉아 있다면, 만약 지금이 더 따뜻한 여름이라면, 내가 더 젊다면, 내가 좀 더 나이 들었더라면.... 우리의 마음은 결코 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87_ 하지만 이렇게 감정 차단에만 열중하다보면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삶을 살다보면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일들이 숲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진짜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과 같아. 지금껏 살면서 얼마나 많이 또 자주 피하고만 싶은 상황을 마주해야 했는지 기억해보라! 게다가 감정을 회피할수록 그 감정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진다. 결국 감정의 발생을 막는 데에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행동반경이 좁아지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해가 갈수록 내가 쌓아올린 벽은 점점 더 두꺼워져서 어느순간 그 공간 안에는 자신이 앉은 의지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고개마저 돌리기 어려워질 것이다.
89_ 불안에 대한 두려움은 그 대상이 장시간의 비행이든 타인에게 당한 모욕이든 거미의 출현이든 상관없이 실제로는 자신 내부에 깃든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실은 거미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이 아니고 거미를 보면서 느끼는 자신의 참을 수 없는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과 다름없으므로 너무나 명백히 실패에 이르고 만다.
91_우리의 행동패턴 중 많은 부분이 감정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루어진다. 때문에 지나치게 과장된 행동을 할 때마다 그 행동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 너무 많은 일얼 하고/ 너무 음식을 많이 먹고/ 담배를 자주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떠들고/ 너무 많은 것을 사고/너무 깨끗하게 정리하고/너무 정리정돈에 집착하고/너무 많은 시간을 컴퓨터앞에서 보내고/너무 자주 여행하고/너무 많은 관계에 매달리고/너무 무리하게 운동하고---
물론 단순히 우리가 어떠한 대상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시선 돌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시이 하는 행동이 순수한 기쁨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불안 때문인지 살펴볼필요는 있다.
97_우리가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로 가득한 문화에 살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지 직장을 그만두는 것 이상의 행동이 필요하다. 평소에 5단에 고정해 놓았던 에너지의 기어를 2단으로 낮추어야 한다. 본인의 에너지 기어를 몇 단계 낮추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기분과 생각이 찾아오는가?
99_"하지만 전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요!"
나는 수많은 상담과 치료를 진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직접 느끼는 대신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선호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103_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 어려운 상황을 버티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대적으로 감정을 회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104_ 우리가 불편함 감정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 중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습득한 방식도 있다. 신체 감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 감정은 우리 몸을 통해 전달된다. 몸과 잘 연결되어 있을수록 우리는 여러 감정을 더욱 잘 구별하고 느낄 수 있다. 몸과의 연결 고리를 느슨하게 만들수록 감정에도 무심해진다.
105_호흡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도 우리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강렬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호흡을 평온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일정하고 잘 조절된 호흡은 대체로 감정의 강도를 이완시킨다. 감정이 강화되면 호흡이 빨라지고 거칠어지기 쉽다. 호흡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감정 역시 호흡을 따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일 것이다.
108_ 감정을 이용해 감정을 회피하는 또 다른 방법은 감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가멍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에 대해 불평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게다가 이러한 이야기는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기에도 쉽다. '항상'이나 '절대로'와 같은 단어가 감정의 힘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향한 비난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을 향한 비난은 자기연민이나 절망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 속에 파고드는 전략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미 감정을 포괄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감정에 대해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 역시 진짜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이 진짜 감정을 어떻게 숨겨왔는지 스스로 찾아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일은 주의를 돌리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느끼는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111_ 명상은 종종 특정한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결국 명상도 특정한 감정을 부인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내면의 투쟁인 것이다. ... 명상의 과정에서 평화로운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곳에 머무르려는 시도 역시 또 다른 긴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완벽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원치 않는 감정을 통제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은 많은 에너지를 요한다. 그저 자신이 느낀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몸이 이완되고 평화로움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한다.
115_ 용감하게 감정을 마주해야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똑바로 바라봄으로써 더 훨기차고 강렬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또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을 그만둠으로써 나의 내면은 훨씬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가 가장 도망치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개의 감정들을 적어보자
119_우리의 본능은 오로지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자!라고 외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본능이 우리를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주봄이다. 더 느긋하고 우아하게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감정의 심해를 그대로 흘러 지나가는 것이다.
121_하지만 이때 캐롤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던 내면의 관찰자가 스스로를 보다 친절하게 대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사실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이제부터는 불쌍하고 외로운 캐롤이라는 역할놀이에서 벗어나겠어'
123_'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 일단 목 안에서 느껴지는 이 덩어리의 정체를 살펴보자. 그러자 덩어리가 좀 더 솟구쳐 올랐다. '옷장의 먼지를 닦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어느 정도 진정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이런 육체적인 감각 아래에는 도대체 어떤 감정이 숨어 있는 걸까?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안 갑자기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캐롤은 그 눈물을 참지 않고 마음껏 흘려보냈다.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고 슬픔과 절망감이 느껴졌다. 몇 분 후 감정의 파도가 모두 물러가자 그녀는 마치 탈진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새 몸과 가슴이 시원해지고 마음속이 평화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곧 자신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차린 캐롤은 하품을 하며 침대로 걸어갔다. 유쾌한 날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쉽고 빠르게 잠에 뻐져들 수 있었다.
124_캐롤이 이루어낸 것은 사실 매우 간단한 것이다. 감정을 회피하던 습관 대신 자신의 감정에 주목한 것뿐이다. 앞서 등장했던 캐롤은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앞 장에서의 캐롤은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맹렬히 움직였지만 오히려 더 큰 절망감만 쌓아갔다. 우리는 캐롤의 두 가지 상황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